한글과 컴퓨터 전하진 사장 (edaily 6.14)

9회말 구원투수로 등장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사람 배짱도 상당히 중요하다. "밑져야 본전"인 것이 아니라 밑지면 경기를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아쉬움을 배신감으로 돌려 야유를 배로 쏟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이 알려진 것은 뒤늦은 이야기긴 하지만, 지난 98년 경영난으로 인해 MS에 팔릴 뻔했던 한글과컴퓨터를 맡아 이를 다시 일으킨, 그야말로 9회말 구원투수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부터다. "극적 반전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물론 한컴을 맡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죠.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한컴같은 기업이 망가지면 이런 대표기업이 또 나올 수 없을텐데,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구요." 어찌보면 다소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는 "툭툭" 던지는 말투의 전사장이 말하는 한컴으로 오게 된 동기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토록 "망가져 가는" 기업의 모습뿐이겠건만 극적반전의 묘미를 느끼고 싶어서라니, 그 정도 배짱이라면 구원투수감이라 할 만하다. "사업을 10여년 하다보니 남들이 생각하는 두려움이라는게 별로 없어졌습니다. 늘 배수의 진을 치는 생활을 해서 어느새 이력이 붙었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이렇게 겉으로는 번듯하게 갖춰진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저는 언제나 게릴라식 야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고민이 시작되면 잠부터 온다는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사업의 고된 경험을 통해 얻은 일종의 "굳은 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배짱이 바로 한컴의 기사회생을 가져온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전사장은 요즘 무척 바쁘다. 어느 벤처기업 사장이라고 바쁘지 않겠는가마는 특히 중국을 오고가느라 전사장은 국내에 있는 동안에는 30분 단위로 약속을 잡아야 할 정도다. "가능성이 무한한 중국 인터넷 시장에 달려드는 국가나 업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미국이 접근 자체는 조금 앞섰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족의 도움이 가능하고 중국 현지인들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 갖는 일종의 적개심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적다는 점이 시장 진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전사장이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지난해 12월 중국을 방문하고서다. 그동안 모두들 실리콘밸리의 움직임만 예의주시하는 사이 2시간 거리도 안되는 중국시장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을 목도한 것이다. 이에 충격을 받은 전사장은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한컴의 중국시장 진출은 이미 가시화됐다. 연상(燕想)이라는 중국 컴퓨터회사가 한컴리눅스의 리눅스워드프로세서 "문걸(文杰)을 수입하기로 한데 이어 한컴은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중국 현지 법인인 "한소프트차이나"를 설립했다. 한소프트차이나는 문걸 판매를 포함한 중국 현지 소프트웨어 사업과 웹스테이션 사업, ISP와의 제휴를 통한 각종 IT사업 등 한컴과 한소프트네트, 한컴리눅스, 하늘사랑 등 한컴 가족사들의 중국내 사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물론 국내 벤처기업들의 중국 진출도 도울 방침이다. 한컴은 특히 중국을 움직이는 5%의 인구를 집중 공략, 파급효과를 노린다는 생각이다. 한컴은 또 한컴리눅스의 경우 일본 레드햇과 손잡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을 다니다 보면 제 시야에 균형이 잡힌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가란 운전할 때 목표물을 멀리 두어야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듯이 멀리, 넓게 내다보면서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어야 하죠." "한글"시리즈로 시작됐던 한컴의 향후 사업은 100여개가 넘는 회원사가 모인 "예카(Yeca)"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사장은 예카를 "인터넷의 모든 사업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자 장소"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그 "길"을 닦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요즘 말하는 "e?마켓플레이스"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남대문 시장이 단순하게 상점들의 모임이고, 백화점은 이를 체계적인 마케팅으로 운용하는 것이라면, 예카는 기업이든 일반이든 고객층을 더욱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효과적인 상거래를 하자는 데서 출발합니다." 전사장은 현재 기업들이 자기 고객을 찾는데 쓰는 비용만도 엄청나다면서 예카는 e?비지니스 시대에 특히 어떠한 수단(미디어)를 통해 고객을 찾는가 하는 기업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예카는 기존의 포털처럼 커뮤니티를 통해 일단 고객수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지식시스템(Knowledge System)을 도입, 퍼스널라이즈(Personalize)함으로써 경쟁력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또 이를 글로벌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한컴 사업의 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전사장은 아마존이 예카 모델의 가장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의 경우 일단 시장 자체가 커서 고객 분석(CRM)에 주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처럼 제한된 인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 지역(Local)내에서 "생태계"를 만들어 자체 소화하는 예카 같은 모델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같은 경우에도 예카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컴은 얼마전까지 "한글워디안 2000"의 출시가 늦어지면서 소스코드를 마이크로 소프트에 넘겼다는 등의 괴소문에 시달렸다. 전사장은 이에대해 "워디안은 기존 엔진과 완전히 다른 엔진으로 작동되는데 이 엔진개발에 드는 시간이 일단 오래 걸렸죠. 또 워디안은 유니코드를 사용하는데, 이 속에 조합형 한글이 포함돼 있어 굳이 조합형 한글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이를 두고 개발을 등한시 한다느니 조합형 한글을 포기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더군요"라고 답했다. 워디안은 단순한 워드프로세서였던 "한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쇄, 출판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됐으며, 다음달중 디버깅을 마치고 정식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전사장은 지금까지 입사 원서를 딱 두 번 내봤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금성사에 들어갈 때 한 번, 한컴에 지원할 때 한 번이다. "저는 뭐든 재미있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사는데, 금성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인지 고민했다기 보다는 보람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에 다른 곳에는 원서도 내지 않았죠." 전사장의 이런 거침없는 성격은 기업을 이끄는 사장의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위험천만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어찌 보면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벤처기업 사장이라는 위치인데,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기도 하다. 기업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전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행중인 프로젝트에 내가 빠지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더라도 이를 잘 받아들여야죠." 그건 오히려 회사와 나를 동질화하라는 주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비효율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죠. 사람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새 세포가 나오고, 기존의 세포가 죽는 메카니즘으로 움직이는데, 조직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조직에 충실하면서도 자기를 지키는 것. 비유(比喩) 뒤에 숨는 능력이 탁월한 전사장의 전언(傳言)은 결국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할지 완전히 해석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모르는척 "장기적으로 사업을 포함해 어떤 삶의 계획을 갖고 있냐"는, 생각하기 따라 매우 개인적일 질문을 던져 봤다. "글쎄요. 경험을 살려서 엔젤이 되어 벤처투자나 교육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어디를 향해 간다는 것 보다는 전 언제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좋고, 중요합니다. 스텝을 밟아 올라간다는 것, 전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한된 시간내에 진행되는 인터뷰는 언제나 하나라도 더 묻고 더 많이 들으려하는 인터뷰어(Interviewer)와 카운터파트인 인터뷰이(Interviewee)의 긴장으로 구조지어지게 마련이다. 더 듣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어에게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 또한 전사장이 향후 개인적으로 또 한컴이라는 기업의 행보를 통해, 묻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거라 믿음으로써 마쳐야만 할 것이다. <산업팀 김윤경 기자 s914@edaily.co.kr> <전하진 사장 이력> 1958 서울 출생 1977. 2 서라벌 고등학교 졸업 1984. 2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1984. 1 금성사 컴퓨터사업부 / System Engineer 1985. 8 일본 벤처기업 DYNAX사 1년간 기술연수 1986. 8 금성사 컴퓨터사업부 / 마케팅 1988. 1 픽셀시스템 창업 / 대표이사 1991. 1 픽셀시스템 법인 전환(자본금 1억원) 1994.11 (주)레가시 설립 / 대표이사 1996. 8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1996.11 캐나다 ZOI Corp. 설립 / 이사 취임 1997.11 (주)픽셀시스템 (주)지오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법인명 전환/대표이사 퇴임 1997. 1 (주)레가시 (주)지오이네트로 법인명 전환 1997. 1 (주)지오이월드 설립 / 대표이사 1997. 6 ZOI World Corporation(San Jose, USA) 설립 / 대표이사 1998. 7? 현재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1999.10 Stanford University / Venture Business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