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내우(內憂)..커지는 외환(外患) (edaily)

한국 경제가 재도약의 시동을 걸기도 전에 바다 건너에서 불어오는 거센 태풍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경기가 추락하는 가운데 물가는 앙등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며 10년 장기호황을 구가했던 미국 경제는 지금 증시와 함께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20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연방기금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나스닥지수는 4.80%(93.72포인트), 다우지수는 2.39%(238.35포인트) 폭락했다. 미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 여력으로 경착륙 가능성은 높지 않다던 연초 각 연구기관들의 전망도 차츰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20일 오후 진념 경제부총리 주재로 개최된 대외경제동향 점검회의에서 참석자들의 60%는 미국의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관측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칠게 착륙(rough landing)하되 경착륙(hard landing)까지는 안 갈 것이란 전망도 늘고 있지만, IT제품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수출이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진 부총리도 21일 열린 능률협회 주최 조찬 간담회에서 "미국의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 경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4%미만이 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더욱 걱정되는 곳은 일본이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 경제는 여전히 막대한 금융부실과 낙후된 경제시스템으로 몸살기가 더해가고 있다. 인플레보다 더 무섭다는 디플레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성장세 회복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문제는 경기를 회복시킬 재정·통화정책의 여력이 거의 소진됐으며,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할 리더십도 없다는 점이다. 바크레이 캐피탈의 한 분석가는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계속 하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엔화절하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4년만에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 일본은 2월에도 흑자폭이 25%이상 줄었다. 일본경제의 무역의존도가 10%대에 불과하지만 엔화절하를 통한 수출경기 진작과 디플레 탈출 시도는 불가피해 보인다. 닛케이파이낸셜데일리는 일본은행의 통화확대 조치로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도이체방크의 한 투자전략가는 증시급락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 추가적인 하락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본의 침체와 엔화절하는 미국의 경착륙 우려에 더해 우리 경제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조찬 강연에서 "일본의 경우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사용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 "엔화약세의 영향으로 환율이 불안해져 물가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 19일에 이어 21일 재차 1300원선을 가볍게 상향돌파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경제의 불안심화는 세계적인 유동성 위기를 불러 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 등 국제자본이 아시아지역 투자비중을 급격히 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금융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악순환마저 우려되고 있다. 재정, 통화, 환율 등 거시경제정책 조합을 적절히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런 외환(外患)에 내우(內憂)까지 겹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월말 4대부문 개혁 완료를 통해 상시 구조조정 체제 진입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신감은 제거되지 않고 있다. 특히 문제의 핵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대문제는 해결의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1년 가까이를 끌고 있다. `현대`라면 무조건 불신하고 보는 시장의 시각이 여전해 누구도 선뜻 소비와 투자를 늘릴 생각을 않는다. 정책 일선에 있는 당국자들 조차도 대부분 `현대` 얘기가 나오면 표정이 심각해진다. 현대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들은 더욱 비관적이다.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는 여전히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건설의 회사정리절차 폐지결정으로 대규모 국제송사에 휘말릴 가능성마저 있어 걱정거리가 커졌다. 연초 국민들의 자신감 회복에 주력했던 정책당국도 이제는 `해외충격으로 인한 경착륙` 가능성을 내비치며 `마음의 준비`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호전된 심리에 대해서도 당국은 평가를 유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해외로부터의 태풍을 막아낼 리더십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세무조사 등으로 언론과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는 국민의 정부는 급기야 터져 버린 의약분업의 부작용과 건강보험의 재정파탄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다. 여기에 지난해 초여름부터 나돌고 있는 `개각설`은 1년이 다되도록 관가를 흔들고 있다. 21일 강연에서 전철환 한은 총재는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정치적 리더십과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이라며 전제를 달았다. 거세게 몰아닥치는 외풍을 막아낼 준비가 우리에게 돼 있는 지 여당과 야당, 정부와 국민 모두가 심각히 생각해 볼 때다. 안근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