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의 "자아분열"..머리와 손이 따로 논다 (edaily)

21일 채권시장은 기다리던(?) 미국의 금리인하 소식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자아분열" 증세를 나타냈다. 펀더멘털은 더할 나위없이 우호적인데도 시장의 미시적인 수급상황이 꼬이면서 채권수익률은 상승한 것이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채권시장이 따뜻한 봄날을 맞아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싶지만 지난 겨울 스키장에서 너무나 흥겹게 놀다가 불의의 충돌사고를 당해 깁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의 거시적인 환경은 꽃샘추위(경기논쟁) 뒤에 봄인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1월 스키장에서 과도한 활강(국고3년 수익률 5%선 하향돌파 등)중 불의의 사고(국고채 과열 발언 등)를 당한 이후 거동이 몹시 불편해졌다는 것. 딜링펀드들이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연기금, 보험권 등 장기투자자들과 일부 체력이 튼튼한 대형기관들만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21일 예보채 입찰에서도 국민연금과 농협은 2000억원 정도의 예보채를 받아갔다. 봄을 즐기지 못하는 많은 시장참가자들이 정신적 분열 증세를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린스펀은 짧고 강한 침체를 원한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50bp만 낮춘 것은 무슨 뜻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다. 75bp를 인하했을 경우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에 좋지 않다. 일단 50bp만 낮추고 몇차례 나눠서 금리를 내린다. 그러나 1월초 전격적인 금리인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한 그린스펀이 그렇게 새가슴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경제의 역학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만약 미국이 신속하게 금리를 낮출 경우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세계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이 경우 일본 경제의 유일한 희망인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미국의 침체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일본을 희생시킬 경우 세계 경제 전체가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 그린스펀은 근본적으로 미국 경제를 좋게 보고 있으며 오히려 "짧고 강력한 침체"로 경제 체질이 강화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다소 특이한 해석도 있다. 이같은 분석들은 "소수설" 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기침체에 이어 일본까지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거시적인 재료에 반응하지 못하는 시장 투신권의 한 딜러는 "채권수익률이 상승한 표면적인 이유는 환율 상승"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한 딜러도 "지금 채권시장을 압박하는 것은 환율 변수이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초 일본 경제위기가 불거지기전 환율이 안정세를 나타낼 때에도 국고3년 수익률은 5.5%선 매물벽을 돌파하지 못했다. 환율이 금리하락을 막는 요소라고 말하기에는 논리가 약하다. 미국 금리인하 소식과 추가금리 인하 가능성이 강하게 시사됐지만 개장초부터 채권매물이 나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국고3년 기준으로 1차 매물벽인 5.5%선을 돌파하는것 조차 어려울 정도로 시장체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거시변수에 반응하기보다는 일시적인 수익률 곡선의 왜곡에서 오는 초단기 차익거래에만 주력했다. 국고3년 수익률이 더 이상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매물공세에 시달리며 5.8%선에 도달하자 "단기 수익률 고점 신호"로 받아들인 기관들이 채권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선네고 수익률이 5.69%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예보채 입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국고5년 2001-2호는 6.30%, 예보 56호 낙찰수익률은 7.29%로 거의 100bp 차이가 났다. 예보채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56호 수익률은 입찰 결과가 나온지 몇 분만에 7.19%로 내려왔다. 거시변수를 채권가격에 반영시키는 것보다 미시적이고 일시적인 수익률 변동에서 차익을 얻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자아분열 거시적인 환경은 분명히 채권시장에 우호적이다. 일부에서는 급격한 경기둔화가 시스템 리스크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붕괴 징후는 무시할만큼 미약하고 아직은 상상속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경기논쟁을 거치면서 시장참가자들은 "경기회복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행동을 지배하는 전체적인 논리는 "채권을 매수하라"고 권하고 있다. 채권딜러들은 그러나 메신저를 통해 날라들어오는 호가를 보며 매도 주문을 내고 전화를 걸어 "매도 확정"을 외친다. 자신이 맡고 있는 펀드의 평가손 등을 생각하면서 서둘러 듀레이션을 줄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은행권의 한 딜러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와 펀드운용이라는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을 토로했다.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분열적 현상의 핵심은 미시적인 시장구조에 있다. 예보채 물량 분포, 투신권 시가평가 펀드의 고민, 은행상품계정과 투자계정의 역학관계 등 조목조목 뜯어봐야할 구조적 문제점들이 많다. 정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