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장 개방:펀드패스포트와 역외펀드

. 펀드패스포트(Fund Passport)란?

펀드패스포트는 펀드의 인가 및 등록, 판매 등에 대한 상호인증 또는 이에 관한 공통규범을 마련하여 이를 채택하는 국가들 간에 펀드의 교차판매(cross-border distribution)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궁극적으로 펀드시장 단일화를 통한 자본시장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한다. 쉽게 말해 해외여행에 여권(패스포트)이 필요한 것처럼 펀드패스포트는 참여국 간 서로의 펀드를 쉽게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며, 펀드계의 FTA(자유무역협정)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해외사례> 유럽연합(EU)의 UCITS 지침

UCITS Directive(Undertaking for Collective Investments in Transferable Securities, 양도성 유가증권에 대한 집합투자증권규정)가 대표적인 펀드패스포트 제도이며, 1985년 유럽연합이 역내 펀드시장 통합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UCITS 지침에 따라 유럽연합에 가입된 한 국가에서 펀드가 승인될 경우, 유럽연합 내의 어떤 지역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며, 이러한 UCITS 지침에 따라 설정되고 판매되는 UCITS펀드가 유럽에서 설정된 펀드의 71%(2012년 말 기준)에 달하는 등 펀드패스포트가 활성화되었다.

UCITS 지침이 제정된 이후 유럽 역내 펀드 산업의 경쟁과 분업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유럽지역 내 국가별 펀드 순자산 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2분기 말 기준 전체 펀드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룩셈부르크26.9%)이며, 프랑스16.0%), 독일(14.3%), 아일랜드(13.8%), 영국(10.9%) 등 5개국이 전체의 81.9%를 차지하고 있다. UCITS 펀드만 보면 룩셈부르크의 비중이 32.2%에 달하고 있는데, 유럽 내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룩셈부르크 및 아일랜드 등이 UCITS 지침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유럽 펀드산업 중심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림1> EU시장 내 UCITS펀드 비중                 <그림2> 글로벌시장 내 UCITS펀드 비중

(자료: 대신경제연구소, 『UCITS펀드 현황과 특성』에서 재인용)
 
. 아시아 펀드패스포트(Asia Region Fund Passport, ARFP)
공모펀드에 공통된 기준을 마련해 APEC 회원국 중 협정을 맺은 국가 간에는 펀드를 감독 당국의 인가 없이 자유롭게 출시하고 판매하자는 제도이다. 호주가 지난 2011년 11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에서 ARFP 도입을 처음으로 제안했으며, ARFP의 롤모델은 앞서 언급한 유럽 공모펀드 기준인 'UCITS'이다.

호주, 싱가폴, 말련, 홍콩, 일본, 한국, 대만, 태국, 필리핀, 베트남,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미국 등 13개국이 지난 2010년 9월부터 2013년 6월까지 8차례의 실무협의를 통해 펀드패스포트 추진 필요성 및 추진방향을 논의했다. ARFP의 출범 목표는 2016년이다.
 
다음은 2012년 말 기준 아시아 주요국의 펀드 운용자산 규모를 나타낸 그림이다. 호주가 1조 6671억달러로 가장 많고, 일본(5325억달러), 중국(4488억달러), 한국(2839억원) 등의 나라가 뒤를 이었다.

<그림3> 아시아 주요국의 펀드 운용자산 규모

(2012년 말 기준, 억불, 자료: 금융위원회)
 
 1. 진행 상황
 
한국,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 재무장관이 지난 9월 20일 '아시아 펀드패스포트 도입 논의 의향서'에 공식 서명했다. 이번 서명으로 참여 여부가 기속(binding)되지는 않으며, 서명국들은 관련 논의를 지속하고 최종 참가여부는 향후 결정하게 된다.

이번 '공동서명식'에는 그동안 참가를 추진해오던 일본과 태국은 불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자산운용업 세계 4위인 호주에 대한 경계심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이다. 호주는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이 잘 발달되어 있고 전반적인 펀드 인프라가 뛰어나다. 아-태 지역 '자산운용업의 맹주'인 호주가 펀드패스포트 도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호주에 자국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2. 향후 일정
2014년까지 대상펀드, 등록절차, 운용 등 패스포트 국가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구체적인 방안을 참여국간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최종 참가여부는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것이며, 특히, 우리 업계가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참여를 지속 유도할 방침이다. 아울러 펀드의 교차 판매와 관련된 후선(Back-office) 인프라 구축 시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추진 중이다.
 
(자료: 금융위원회)
 

Ⅳ. 역외펀드(off-shore fund)란?
펀드가 어느 국가에서 설정∙설립되는지에 따라 역내펀드(On-shore fund)와 역외펀드(Off-shore fund)로 구분할 수 있다. 역외펀드는 세금이나 각종 규제를 피해 자유롭게 각국의 주식 및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기 위해 세율이 낮은 조세피난처(Tax heaven)에서 운용하는 펀드이다.

국내법에 따라 원화로 설정된 역내펀드와 달리 역외펀드는 외국법에 따라 외국통화로 설정된다. 외국 자산운용사의 상품으로 국내외에서 판매되며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한 펀드 내 환헤지가 불가능해 통상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 환율 변동 위험을 분산하며, 전 세계의 금융시장, 실물자산,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투자자의 경우 본인이 직접 환율 예측을 하고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글로벌 경기의 변동성이 커질 경우 국내 투자보다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신규 역외펀드 설립이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역외펀드 60여 곳이 외국집합투자기구로 등록했으며, 지난달 10월에만 케이만군도, 델라웨어 등 조세피난처에 근거를 둔 역외펀드 7곳이 새롭게 영업인가 신고서를 제출했다.

다음은 역외펀드와 해외펀드를 간략하게 비교한 도표이다.

<표1> 역외펀드 vs 해외펀드

아시아 펀드패스포트 도입 논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역외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11월 초 기준 229개 역외펀드의 연초이후 평균수익률은 10.65%, 2년 수익률은 24.19%에 달한다. 앞서 비교 대상으로 언급한 국내에서 설정되어 운용되고 있는 해외주식형 펀드(대유형 기준)의 2년 수익률이 8.45%(연초 이후 수익률 3.14%)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 투자하는 역외펀드가 강세를 보였다. 미국 제약사와 생명공학 섹터에 투자하는 ‘프랭클린 바이오테크놀리지 디스커버리 펀드’의 2년 수익률이 95.65%로 가장 높았으며, 저평가된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블랙록 일본 밸류 펀드'와 '블랙록 일본 오퍼튜니티 펀드'가 각각 74.61%, 73.81%의 2년 수익률을 나타냈다.

<표2> 역외펀드 수익률 상위펀드
(2013.11.01기준, 2년 수익률 순으로 정렬, 자료: KG제로인)
 
Ⅴ. 기대효과 및 시사점
펀드패스포트 도입이 가져오는 영향은 크게 국내 투자자와 국내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펀드 투자자는 펀드패스포트 출범 이후 개방형 역외 공모펀드에 손쉽게 투자가 가능해 펀드 투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며, 이는 곧 분산투자의 기회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성장 촉진이 가능하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펀드패스포트 참여를 계기로 국내 운용업계의 경쟁이 이전보다 심해지면서 국내의 펀드 투자수요를 해외 자산운용사에 잠식당하는 것 역시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때문에 정부에 무엇인가 주문하기에 앞서 펀드 업계 스스로 경쟁력 있는 상품 개발로 수익률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유럽과 같은 단일 경제시스템도 아니며, 규제나 화폐 등에서 국가간 차이 큰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펀드시장 개방은 찬반 입장을 떠나서 불가피한 일이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해외의 선진 기법과 다양한 투자 상품을 한국에 들여오고 우리 상품 또한 해외에 내보낼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한 시점이다.

[ 강영현 KG제로인 펀드애널리스트 www.FundDoct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