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퇴직연금제도 개선에 대한 제언

1. 조사배경
 
금년에 적립금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국내 퇴직연금은 기존의 퇴직금이 연금으로 전환되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제도부문에 있어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계약형 퇴직연금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퇴직금 우선 보호를 위해 최근에는 30인 미만 사업장을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 발전,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와 계약형 퇴직연금제도 비교 등을 통해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에 적합한 모형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2. 호주 슈퍼애뉴애이션 도입 배경
 
(1) 역사적 배경
‘91년 호주는 취약한 공적연금을 보완하고 미미한 개인저축을 증대시키고자, 기존 임의 퇴직연금제도를 법정제도로 강제화 한 슈퍼애뉴애이션(DC형 중심)을 도입하였다.
- 호주의 공적연금은 대상자가 제한되며 금액도 평균임금의 25% 수준으로 최저생활만 보장하고, 전액 연방정부의 세금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이 가중 되었고
- 또한, 기존의 퇴직연금은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고 적립률도 임금의 3%에 불과하여 노후보장에 한계가 있었으며,
- 국민 개개인의 저축률도 매우 저조하여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계기 마련이 호주 경제의 큰 이슈였다.
따라서 호주는 기업주의 퇴직연금 부담금 납입을 의무화하고, 일반 금융저축대비 세제혜택을 강하게 부여하여 대부분의 개인저축성 자금이 근로자 추가납입 형태로 유입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호주 연금제도의 구성>
구분 주요내용
노령연금 - 65세 이상 중저소득 노인 대상으로 자산/소득조사를 통해 연방정부에서 보장
- 퇴직자의 75%가 전부 또는 부분 보장
- 소비자물가지수(CPI) 연동 정액연금
ㆍ개인:평균소득의 25%, 부부:평균소득의 40%
퇴직연금 - 정규직, 비정규직, 자영업자 가입 가능
- 기업주가 법정 기여금 납입(DC 형태)
- 일시금 또는 연금 수령 가능
- 근로자 92%, 15세 이상 국민의 80%가 가입
임의퇴직연금
개인연금
- 자발적 퇴직연금 가입형태
- 퇴직연금 이외에는 세제혜택이 없어 개인연금 가입이 미미


(2) 호주 슈퍼애뉴애이션을 DC 중심으로 강제화 하게 된 배경
호주는 공적연금 보완을 위한 사적연금의 역할제고와 국내저축의 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의 위축완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목적으로 DC형태의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저축의 증대는 現 경제성장의 위축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호주 경제가 지속적으로 늘릴 수 없는 외채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슈퍼애뉴애이션 시행으로 ‘05년까지 호주의 저축은 0.7% 늘어나고 향후 20년 안에는 1.25% 늘어날 것이다.
- John Dawkins(호주 재무장관), 1992 -

- 호주의 공적연금은 국가에서 정한 소득 및 자산조사 기준을 통과해야만 수급자격이 주어지는 제한적 성격이 가미된 제도라는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 수급대상자가 보유한 자산과 소득수준을 사전에 조사하여 일정 범위에 해당하는 대상자에게만 노령연금을 지급하며, 일정범위내의 수급대상자라도 소득수준에 따라 연금급여가 조정되는 형태이고
 √ 따라서 전체 노령인구의 약 60% 가량만이 노령연금을 수령하였다.
- 호주 정부는 ‘80년대 이후 급속한 고령화 진전과 공적연금 재정부담 증가에 따라 사적연금부문 활성화에 대한 다양한 방안 강구가 필요했다.
 √ 호주 공적연금의 모든 재원은 전액 연방정부의 세금으로 구성된다는 한계점이 있고
 √ 노령연금의 급여도 심각한 빈곤을 방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별다른 준비없이 노후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으며
 √ ‘80년대까지의 퇴직연금은 대기업이나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화이트컬러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임의적 성격의 제도로 소수 특권층에만 국한되었다.
- 호주정부는 ‘91년 강제가입 퇴직연금제도인 슈퍼애뉴애이션 도입을 전격 결정하게 되었다.
 √ 국민들의 은퇴소득 마련을 위한 자조노력의 시급성과 낮은 저축률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노사관계위원회 합의를 통해 임금인상분으로 최고 3%까지 퇴직연금에 납입하기로 합의(현재 9.25%) 하였다.
 
<슈퍼애뉴에이션 개런티 비율>
년도 '12~'13 '13~'14 '14~'15 '15~'16 '16~'17 '17~'18 '18~'19 '19~'20
비율 9% 9.25% 9.5% 10% 10.5% 11% 11.5% 12%
 
 √ 사용자가 근로자의 계좌에 기여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고, 근로자는 추가납부가 가능한 DC제도로, 근로자 자조노력을 촉진시키고자 2층과 3층 노후보장체계를 통합한 형태이다.
 √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기여금, 운용수익, 수령연금에 대해 모두 최저세율인 15%로 과세하는 한편 가입대상도 자영업자까지 크게 확대되었다.
 * 기여금에 대한 세제혜택은 슈퍼애뉴애이션 자산이 호주 가계자산에서 주택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3) 호주 슈퍼애뉴에이션의 특징
호주 슈퍼애뉴애이션은 우선 가입할 기금을 선택한 후 해당 기금에서 line-up하는 상품을 가입자가 개별 선택하도록 하였다
- 호주 퇴직연금은 상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구좌를 개설한 연금기금을 의미하고
- ’05.7월부터는 기금 선택제를 도입해 근로자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기금이 아닌 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 주로 소매형 기금과 자가운영형 기금 위주로 운용된다.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기금의 종류>
구 분 주 요 내 용
산업형 기금
(Industry Fund)
- 산업별 기금으로 주로 산별노조에 의해 운용
- 저비용 구조의 별도 서비스 없는 단순 기금
- Default Fund로 운용하는 사례도 있음.
소매형 기금
(Retail Fund)
- 생보사,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운용
- 투자 어드바이저나 은행 지점을 통해 판매
- 금융서비스와 Bundle된 상품으로 판매
회사형 기금
(Company Fund)
- 해당회사의 근로자에 의해 운용되는 기금
(컨설팅회사 자문을 통해 펀드를 구성)
- 소매형 기금으로 전환되는 추세로 축소되는 중
자가운영형 기금
(SMSF)
- 평균자산 3억 이상 개인들이 직접 기금을 구성
- 5인 미만, 가족단위 구성
- 매우 빠르게 성장, 투자자문을 통해 운용
공공부문 기금
(Public Fund)
- 공무원 대상 운용 기금
출처 : APRA Annual Superannuation Bulletin June 2013

  * 소매형 기금은 은행, 보험사 등의 금융기관이 영리를 목적으로 직접 운영하는 계약형 구조로 산업형/회사형 기금보다 다양한 투자옵션 제공하고
  * 자가운영형 기금은 평균 잔고 3억이상 개인자산가가 소수단위(5인미만)로 직접 펀드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구조로 변호사, 회계사, 투자자문 컨설팅 Fee 등으로 고비용 운용 구조이다.
 
- 각 기금의 주식 투자비중은 5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기금 종류별 자산운용 현황(2013년)>
구분 산업형 소매형 회사형 공공부문형 전체
주식 국내 29% 26% 30% 22% 26%
  해외 25% 22% 28% 27% 25%
부동산 11% 6% 8% 10% 10%
채권 국내 6% 15% 14% 7% 9%
  해외 5% 7% 6% 7% 6%
현금 6% 14% 6% 9% 8%
기타자산 18% 10% 8% 18% 16%
출처 : APRA Annual Superannuation Bulletin June 2013
 
- 호주는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양호한 편으로 펀드 투자가 일반화되어 있다.
√ 일반국민들의 생각이 60세까지 장기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20~30대는 펀드 투입 후 수익률에 무관심한 편이나 장년층으로 갈수록 관심이 높았다.
√ ’08~’09년의 금융위기 기간동안 수익률은 -8%, -11%이나, 최근 ‘13년 주식시장 활황으로 13.7%의 성과를 내었다.
 
<호주 퇴직연금 펀드 수익률 추이>

호주 퇴직연금 펀드 수익률 추이 그래프
 출처 : APRA Annual Superannuation Bulletin June 2013

(4)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관련 규제 변화
- 호주 슈퍼애뉴애이션의 경우 ‘07년 60세 이후 인출시 비과세 혜택이라는 세제개혁을 통해 장기유지 유인력을 높였으며, ‘13년 기존의 default Fund 제도를 대신한 Mysuper제도를 도입하여 근로자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 Mysuper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기업주/노조와 협의하여 가입자의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자동으로 저비용 구조의 퇴직연금 펀드에 투입되도록 지정하는 것이다.
 
<슈퍼애뉴에이션 규제 변화>
구 분 주 요 내 용
’85년
방카슈랑스 허용
- 은행 중심의 규제완화로 은행이 생보상품 판매대리점 또는 판매제휴형 방카 허용
’92년
강제 퇴직연금 도입
- DC 구조로 전 근로자 대상 가입 의무화
- 기업주가 법정 비율 납입 의무
’97년
금융시스템 개혁
- 은행 지주사 및 복수 금융기관 소유 허용
'98년
금융감독청 설립
- APRA(Australia 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 호주 금감원(금융건전성, 소비자보호, 거래 감독)
’02년
금융서비스 개혁
퇴직연금 기여금 상향
- APRA에서 모든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정보 공시 의무화
- 퇴직연금 법정 기여비율 9%로 상향
’06년
기금선택제 도입
- 근로자에게 퇴직연금 펀드를 선택할 권리 부여
’07년
세제개혁
- 연금세제 개혁
 * 50세 이하 저율과세 대상 기여금 상향조정, 연금수령 세제혜택 연령 55세→60세로 상향, 60세 이후 인출시 일시금/연금 비과세
’13년
MySuper 도입
- 가입자가 상품 미선택시 투입되는 디폴트상품
- APRA에서 License를 부여받은 펀드만 인정
출처 : APRA, 호주 통계청
 
- ‘04년 RSE(Registered Superannuation Entity) License를 도입하여 기금 리스크 관리체계를 중요 심사요건으로 규정하고 내부감사/외부전문기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도록 하였다(년1회).
- Superannuation 기금은 상품 line-up시 Gate Keeper가 모델포트폴리오에 근거하여 펀드에 대한 정성/정량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가입자가 상품 선택시 반드시 상품설명서를 제공토록 하고 있다.
- MySuper 상품은 호주 APRA에서 License를 받은 사업자가 APRA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인가를 받아 판매하고 있다.
* MySuper는 꾸준한 수익률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정수준 이상의 펀드 운용 규모를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 일반 퇴직연금 펀드는 주식비중이 60~75%인데 반해, MySuper의 경우 주식비중이 45% 수준으로 보수적으로 운용된다.
 
3.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와의 비교
 
- 호주는 취약한 공적연금을 보완하고 미미한 개인저축을 증대시키고자, 기존 임의 퇴직연금제도를 법정제도로 강제화 하기 위해 슈퍼애뉴에이션을 도입하였으나,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 우리나라 국민의 저축률도 미미하기는 하지만, 3층 보장구조에서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 호주의 슈퍼애뉴애이션은 기금형 구조로서 회사에서 독립된 별도의 법인격을 갖는 연기금을 설립하고, 그 기금이 연금규약에 기초해서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형태이나, 우리나라는 계약형 구조이다.
* 계약형이란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 하에 퇴직연금 사업자, 즉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회사에게 일괄 위탁하는 방식이다.
* 기금형이란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를 통해 회사와 별도로 독립된 퇴직연금 기금을 신탁형태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제도로 사용자는 노사공동으로 기금운영 관련 정책을 결정하여 수탁자에게 기금운용 업무를 위탁하고 수탁자가 모든 관리책임을 지고 기금을 신탁형태로 운용된다.
 
기금형과 계약형 운영구조 
- 호주는 사망/영구장애/심각한 재정궁핍을 제외하고는 중도인출을 못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무주택자의 주택구입, 6개월 장기요양 등 호주보다 중간정산이 완화된 형태이다.
- 호주의 과세체계는 기여금, 운용수익, 수령연금에 대해 모두 최저세율로 과세(T-T-T)함에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 기업주 부담은 전액 손비인정 되고, 근로자 부담금도 세제혜택이 부여되어, 오히려 슈퍼애뉴애이션으로 개인 금융자산의 쏠림 현상도 초래하고 있다.
- 반면, 우리나라는 ‘부담금 공제 – 운용수익 비과세 – 연금지급시 과세(E-E-T)’ 형태임에도 인센티브로서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상황이다.

4.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 개선 방향
 
(1) 제도개선을 위한 토대 진단
최근 우리나라가 도입하고 있는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의 개선에 대한 필요성 제기와 함께 기금형 도입이 관심을 끌고 있다. 기금형 도입의 가장 주요한 이슈는 노사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퇴직연금 운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적립금을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퇴직연금적립금이 자본시장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주장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없을까? 제도가 한번 도입되면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그에 따른 영향을 세부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이런 작업이 선행된 이후에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도 늦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현행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의 특성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노후보장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 역시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은 Push형 시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에 대한 니즈를 환기시키고 적극적인 권유가 있어야만 제도를 도입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미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 중에는 자발적으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 중에서 이런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아직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외부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어야만 퇴직연금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전형적인 Push형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퇴직금이라는 매력적인 존재가 잔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시장이 Pull형 시장으로 전환되길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Push형 시장에서 시장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중개기관이 필요하다. 누구나 보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필요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보험설계사라는 중개기관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 하겠다. 현재 퇴직연금시장에서 이러한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퇴직연금사업자이다.

기금형의 도입은 퇴직연금사업자의 수익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운용관리수수료는 물론 자산관리수수료의 상당부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낮은 수익성 때문에 퇴직연금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기금형의 도입은 결정타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의 수급권 강화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기금형이 오히려 근로자의 수급권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저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많은 사업자들이 퇴직연금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업비중을 줄이게 되면 아직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에 퇴직연금을 소개하고, 도입을 적극 권유할 매체의 역량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어진다. 이는 퇴직연금의 확산이라는 정책기조에도 위배된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현행 퇴직연금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여 고령화시대에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기금형보다는 계약형의 틀 내에서 기금형의 장점을 접목하는 일종의 혼합형 방식이 지금의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개혁의 수준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점을 전제로 현행 퇴직연금제도의 개선을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2) 현행 퇴직연금제도 개선방안
호주의 성공사례는 기금형에 있다기보다는 매력적인 퇴직연금세제와 디폴트옵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기금형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장점을 계약형 구조에 접목하면 퇴직연금제도는 고령화시대의 노후소득보장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것이라 본다.

먼저 퇴직연금세제 개편방안을 살펴보자.
현행 퇴직연금세제는 사용자에게는 부담금에 대해 손금산입을, DC나 IRP에 추가납입하는 근로자에게는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가입자의 추가부담금은 소득공제 방식에서 2013년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결과 세제혜택의 축소를 불러오게 되었다. 이를 다시 소득공제 방식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추가부담금에 대한 한도가 연 1,800만원으로 새로이 설정되었다. 추가납입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근로자들인데, 이들에게 많은 세제혜택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논리는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OECD 국가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는 비록 현역시절에는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근로소득이 사라지는 은퇴 후에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중산층은 은퇴후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는 잠재적 빈곤층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노후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납입한도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연간 단위보다는 3년 또는 5년간 연평균 1,800만원 정도로 완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추가납입은 대부분 성과급을 받는 해에나 활용할 수 있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성과급을 많이 받았다 해도 지금처럼 한도가 경직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에는 성과급을 노후소득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 호주의 경우를 보면 근로자가 세후급여에서 추가부담을 하는 경우 연간 15만달러까지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를 비인정기여금(non-concessional)이라 한다. 우리나라도 호주처럼 납입한도를 크게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한도가 정해진 지 얼마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한도를 크게 늘리는 것보다는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둘째는 디폴트옵션의 개선이다.
현재는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으로 원리금보장형 상품만 디폴트상품으로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시대에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실적배당형 상품을 디폴트 옵션으로 인정하는 퇴직연금 선진국의 동향과도 배치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호주에서 퇴직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기금형이 아니라 디폴트옵션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호주의 디폴트 옵션은 우리나라처럼 원리금보장형만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금별로 가입자의 연령 및 리스크 특성을 감안하여 설정하고 있다. 라이프사이클펀드 등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 선진국이라는 호주의 가입자들도 퇴직연금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운용지시를 하지 않는 가입자의 비중이 50% 정도나 된다. 이들 가입자의 적립금은 디폴트 상품으로 들어오며, 이들 자금은 대부분 주식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디폴트 옵션도 원리금보장형 상품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라이프사이클펀드나 타겟데이트펀드처럼 고령화시대에 적합한 상품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셋째는 기금형의 장점을 계약형에 접목하는 방법이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IPS 작성과 투자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라 하겠다. 적립금 운용의 방향과 지침을 제시하는 IPS와 운용관련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인 투자위원회는 동시에 실행될 때 그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어느 하나만 적용되면 반쪽짜리 개혁으로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DB형 적립금 운용의 극단적 보수화는 운용시스템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IPS와 투자위원회는 이러한 운용시스템의 부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DB형에 적용되는 사안이긴 하지만 DC형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상기 레포트는 작성자 개인 의견에 기초하였으며 KG제로인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김성일 KG제로인 퇴직연금 연구소장 www.FundDoct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