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펀드 시장을 되돌아보며....

납회일 주가폭락으로 여의도 증권가는 을씨년스런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증권시장이야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라지만 올 한 해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간접투자 시장인 자산운용업계엔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예컨대 자산운용업법 제정으로 갑론을박이 오갔고, 상장지수펀드가 국내에 첫 선을 보이면서 국내시장에 정착하느니, 용두사미를 끝나고 말 것이라니 하는 말들이 오갔다. 한 해 동안 자산운용업계는 그야말로 증권시장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따라서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반추하고 앞날을 조망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은 2002년을 마감하면서 투신권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을 정리해 보았다. 

1. 자산운용법 제정 

한 해 동안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슈였다. 
자산운용업법 제정은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지만, 일단 큰 틀이 마련되면 운용업계가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시행까지는 좀더 기다려야하고 여전히 해결할 문제도 남아있지만, 증권투자신탁업법과 증권투자회사법이 자산운용업법으로 일원화되면서 기본 골격을 갖췄다. 우선 은행과 같은 수탁회사의 위상이 강화된다. 

회의적인 시각도 많지만 수탁회사는 운용사의 운용이 투자설명서나 법령에 어긋나는 지 감시하는 기능이 강화된다. 마찬가지로 운용의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펀드 수시공시제도가 도입된다. 앞으로는 투자자가 펀드 운용과 관련한 변동 상황을 즉시 알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부동산이나 금과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다양한 펀드의 출현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업계 운용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을 각오해야 할 전망이다. 투신사와 자산운용사의 면허가 일원화되기 때문에 자본금이 100억원에 못미치는 운용사는 증자를 해야하고, 이 과정에서 퇴출되거나 합병되는 회사들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아울러 투신사의 계열사에 대한 주식 편입 제한이 풀리면서 경쟁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자산운용법에 운용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2. 상장지수펀드(ETFs) 도입과 정착 

ETF가 국내 시장에 안착했다. 
ETF는 지난 10월 도입 당시 기관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비아냥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제 규모가 출범 당시보다 2배나 늘어나는 등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거래량 역시 250만주에 달해 초기의 무관심에서 벗어났다.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ETF는 앞으로 더욱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국내시장은 선물 등 파생상품 시장이 발달돼 있어 성장성은 더욱 커 보인다. 

3. 초저가 수수료 펀드 논란 

2002년 하반기엔 연간 보수가 0.1%대 밖에 안 되는 초저가 수수료 펀드가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비난과 함께 제살깍아 먹기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시중 자금은 이런 펀드들로 속속 모여들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운용업계 질서가 흔들리고, 결국 많은 회사들이 손익분기점도 못 넘기고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여력이 되는(?) 몇몇 회사에서 다시 같은 류의 펀드를 선보이면서 업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품을 내놓은 회사들은 경쟁과 상품성, 그리고 수익성의 논리를 내세우며 나름대로 대응을 했다. 더욱 치열해지는 생존 환경에서 수수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4. 채권형 펀드 1년 내내 몸살,,,단기화 가속 

3개월짜리 단기 채권형 펀드가 급증하면서 업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결국 자금의 단기화는 운용사들의 수익구조를 악화시켜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중금리의 불확실성과 안정수익을 선호하는 기관들의 요구에 따라 단기 펀드가 급속히 늘어났다. 또 변동금리부채권(FRN)이나 스왑을 활용하는 펀드가 봇물처럼 늘어났지만 기대만큼 수익을 내주지는 못했다. 특히 금리상승을 예상하고 FRN을 많이 편입하거나, 스왑 리시브 전략을 취했던 펀드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반기엔 카드회사에 대한 신용위험이 급증하면서, 카드채 급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카드채가 ‘무서웠던’ 한 해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펀드간 성과 차별화와 부침이 심하게 일어났다. 결국 채권지수는 8%가 넘었지만, 채권 펀드의 수익률을 5% 대 중반에 머물렀다.  

5. 수수료 선취형 펀드 정착 

올해 초엔 고객이 펀드에 가입시 판매수수료를 내면 언제 돈을 찾더라도 환매수수료를 물지 않는 선취형 펀드가 인기를 끌었다. 

선취형 펀드는 3개월, 6개월 등으로 환매수수료 부과기간을 두고 이 기간 내에 펀드를 환매하면 이익금의 70~90%를 환매수수료로 메기는 일반 펀드와 달리, 가입시점에 미리 0.5%~1.0%의 수수료를 떼는 상품이다. 
올해 초 대형투신사들이 내놓은 상품을 중심으로 선취형이 인기를 끌면서 어느새 선취형 펀드가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6. 스타매니저 퇴색, 팀제 운용 효과 

스타는 이제 ‘왕년의 스타’가 됐다. ‘박xx 펀드’ 등 매니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펀드들이 자취를 감췄다.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운용이 비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형 운용사를 중심으로 팀제 운용이 본격화됐다. 아울러 리서치 팀이 투자 유망종목을 고르고, 컴플라이언스 팀이 운용 감시를 강화하는 등 펀드운용의 분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팀제 운용의 형태는 운용사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매니저 1명의 투자수익률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와 안정적 운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7. 펀드 배타적 판매권 

펀드에도 우선 판매권이 부여됐다. 배타적 판매권은 상품구조가 특이한 펀드 등에 대해 1개월, 3개월 등 일정기간 우선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 상품 개발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투신협회는 펀드의 독창성 등에 높은 비중을 주고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운용업계에서는 독창성이 높은 상품의 시장성과 배타적 판매기간이 짧아 판매로 이어지는 데에는 재미를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8. Fund of Funds 태동 

‘펀드투자 펀드’는 펀드에 모인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성격이 다른 여러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상품으로 지난 6월말 허용됐다. 
외국처럼 ‘펀드투자 펀드’에 고객성향에 맞는 펀드를 편입하는 등 고객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수수료 부분과 자사 펀드 끼워팔기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업계의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즉 운용기간이 길고, 성격이 제대로 갖춰진 펀드가 드물어 제도만큼 현실성을 발휘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9. 펀드 내 부실채권 상각 논란 

고객이 환매를 요청하면 운용사에서는 보유 중인 주식이나 채권을 팔아 환매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손실처리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일부 하이일드 펀드, 코스닥 펀드 등에 편입된 자산이 부실화되면서 한바탕 입씨름이 오간 것이다. 

예컨대 장부가로 판매해 놓고, 실제 가격과 괴리가 벌어지자 손실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문제, 프리코스닥 펀드가 환매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문제 등 한해 동안 부실자산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양산했다. 아울러 투신안정기금으로 지원받은 자금으로 운용하던 펀드의 부실화 문제 등으로 기금의 존폐 논란까지 끊이지 않은 상태다. 

10. 뮤추얼 펀드의 위기 

뮤추얼 펀드 존폐 논란도 한 해 동안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통합 자산운용업법 실시로 자산운용사들이 수익증권 판매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뮤추얼 펀드는 명맥 유지가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통합법이 실시되면 설립이 쉬운 수익증권 쪽이 인기를 끌 것이고, 따라서 투명성 등을 주요특징으로 하는 뮤추얼 펀드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뮤추얼 펀드 설립 자본금의 완화, 법원설리등기의 면제 등 제도적인 대책 마련으로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도 2002년 한 해 동안 자산 운용업계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장부가 채권형 펀드는 전체 채권형 펀드의 3% 수준까지 줄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외국계 투신사의 활약이 돋보였고, 운용사별 수탁고 차별화도 심화됐다. 

MMF가 50조원까지 증가했고, 펀드의 로스컷(손절매) 규정에 대한 논란도 한 해를 달궜다. 1세대 펀드매니저들이 대거 운용사의 경영진에 합류한 것도 눈에 띈다. 이 밖에 다양한 펀드 상품이 출시됐고, 채권수익률 플러스알파를 추구하는 펀드나 다양한 시스템 펀드들이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출처 : 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