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펀드 시장을 가다] ①

2001 년 늦가을의 어느날 해질녘, 뉴저지 세커서스에 있는 하츠마운틴사 소유의 한건물. 
카나리캐피털파트너스라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카나리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직원들은 증시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38 살의 에드워드스턴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은행이 설치해준 단말기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이게 좋겠군. 이 펀드들을 300만달러씩 사도록 합시다. 에드워드 스턴은 BOA가 판매하는 뮤추얼펀드인  네이션펀드 중에서 국채투자비중이 높은 펀드 몇 개를 골라서 수석펀드매니저에게 전해준다.

 이날 뉴욕주식시장에서는 실업률이 6%선에 올라섰다는 소식에 다우와 나스닥지수가 모두 곤두박질쳤다. 반면 국채수익률은 급락,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스턴은 오늘 날짜로 정렬된 채권형펀드의 순자산가격(NAV)을 보고 펀드규모가 5000만달러 이상인 것 몇 개를 골라냈다. 장마감후 뮤추얼펀드를 살 경우에는 그 다음날 오후 4시에 나오는 기준가(NAV)로 정산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카나리와 BOA는'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오늘 날짜의 기준가를 적용받고 있다.

"이렇게 경제지표가 망가지고 있다면 연준리는금리를 또 내릴 겁니다. 채권형펀드 비중을 더늘리는 것이 좋겠어요.”

 스턴은 사무실을 나서면서 올해 펀드수익률을 대충 계산해봤다. 기술주 투자에서 손실을 보기는 했지만, 채권형펀드 편입비율을 높이면서 올해도 25% 정도의 수익률은 무난할 것 같았다. 스턴의 페라리는 미국최대의 헤지펀드를 꿈구는 주인의마음을 아는지 경쾌하게 질주해나갔다.

2003년 9월 3일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연초부터 벼르고 있던 헤지펀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스피처 총장은 "카나리캐피털을 운용하는 에드워드스턴은 불법적인 시간외 매매와 초단기매매로 다수의선량한 뮤추얼펀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이로써 미국 최대의 헤지펀드를 꿈꾸던 스턴의 카나리아는 울음을 뚝 그치게 됐다.

 ◇헤지펀드와 뮤추얼펀드... `악의 고리`
 미국 뮤추얼펀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카나리캐피털의 불법 펀드거래에 대한 조사가 뮤추얼펀드 전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수단인 뮤추얼펀드의 신뢰가 수직 하강하고 있는 것.

 이번 사건은 부자들의 펀드인 헤지펀드와 보통사람들의 펀드인 뮤추얼펀드가 어떻게 부정의 고리로 연결돼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충격을 주고 있다.

 벌써부터 해당 뮤추얼펀드의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에 나설 태세다. `펀드천국`인 미국의 펀드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뮤추얼펀드는 국민들의 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기금에서 퇴직연금까지 뮤추얼펀드가 고객으로 삼지 않는 대상은 없다.

 미국의 웬만한 가정에서는 한 두가지 뮤추얼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이다. 미국인들이 뮤추얼펀드에 돈을 맡기는 이유는 그만큼 이 펀드 시스템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그 같은 신뢰가 산산히 깨졌기 때문이다.

 카나리캐티탈사건에 연류된 뮤추얼펀드(또는판매사)는 BOA, 뱅크원, 스트롱캐피탈, 야뉴스캐피탈등 4개사다. 이들은 업계 상위권으로 미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금융사들이다.

 이런 금융사들이 다수의고객에 해가될 것을 알면서도 부자들의 펀드인 헤지펀드와 결탁, 불법적인 매매를 눈감아 준 것이다.

 ◇카나리펀드의 탄생
 카나리캐피털은 헤지펀드의 전형이다. 이 펀드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80대부호중 한사람인 레오나드스턴가문의 가족펀드로 출발했다.

 펀드운용을 맡은 애드워드스턴은 레오나드 스턴의 둘째 아들이다.

 스턴가문은 1926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드워드의 할아버지인 막스스턴은 카나리아(canary)  등 애완동물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스턴가문의 헤지펀드 이름도그래서 카나리가됐다.

1959 년 가업을 물려받은 레오나드 스턴은 부동산 투자로 사업을 확장, 하츠마운틴을 세우고, 뉴욕주 최대의 부동산투자회사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레오나드스턴은 엠마뉴엘과 애드워드두아들을 뒀다. 2000년 가업을 승계한 애드워드는 하츠마운틴의 애완동물 사업부문을 매각, 1억달러 이상의 차익을 남긴다.

 애드워드는 이자금으로 금융업을 해보겠다는 평소의꿈을 실현한다. 애드워드는 1998년부터 소규모 투자를 해왔다. 자금을 확보한 그는일단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카나리캐피탈의 시작은 이처럼 평범한 가족 펀드였다.

 카나리캐피탈의 자산은 2001년까지 1억8400만달러였으나 그해 말 4억달러로 불어난다. 가족펀드로 출발한 카나리캐피탈은 1.5%의 수수료와 25%의 성공보수를 받고 외부자금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헤지펀드 운용초기, 카나리캐피탈의 수익률은 100%를 웃돌았으나, 2001년에는 수익률이 28.5%로 떨어진다. 2002년에는 수익률이 15%로 내려가고 스턴은 외부 투자자금을 모두 돌려주게 된다.

 카나리캐피탈은 헤지펀드들이 흔히 하는 펀드단기매매(timing) 등에 주력했다.

 미국의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펀드오브펀드(fund of fund)`로 주식, 채권 외에 다른 펀드에도 투자한다. 헤지펀드들은 초단기 뮤추얼펀드 매매에도 능숙하다.

 카나리캐피탈은 투자수익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급기야 법으로 금지된 시간외매매(late trading)에도 손을 댄다.

 스피처총장이 카나리의 목을 조를 수 있었던 것도 시간외 매매 때문이었다. 단기매매와 달리 시간외 매매는 명백한 불법이다.

 ◇시간외 매매와 단기매매
 시간외 매매는 앞서 글에서 스턴이 매매 주문을 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미국의 뮤추얼펀드 기준가는 증시가 마감되는 오후 4시를 기점으로 단 한번만  계산한다. 

 만약 오후 4시 이후 펀드를 사고 싶다면 그 가격은 다음날 오후 4시에 산출되는 기준가가 된다.

 스턴은 BOA와 특 별약정을 맺고, 당일오후 4시 이후에도 당일 기준가로 펀드를 살수 있었다. 이 같은 거래는 뉴욕주 마틴 법안에 의해 금지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텔이 장마감후 실적이 대폭 호전됐다는 호재성 뉴스를 터뜨렸다고 하자. 인텔을 편입한 뮤추얼펀드의 기준가(NAV)에는 이 재료가 반영돼 있지 않다.

 스턴은 뉴스를 보고, 훨씬 싼 가격의 기준가로 인텔이 편입돼있는 뮤추얼펀드를 살 수 있다. 다음날 인텔의 주가가 급등하면 이 펀드의 기준가도 같이 올라갈 것이고, 스턴은 그 차액만큼 이익을 본 셈 이다.

 스피처 총장은 이 같은 시간외 매매를 "경마 경주 결과를 다보고 난 후에 베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시간외매매는 기존의 뮤추얼펀드 투자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가로채는 악질적인 범죄다. 펀드의 순자산가치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장마감후 악재가 나왔을 때도 스턴은 오늘의 기준가격으로 미리 펀드를 팔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선의의 펀드투자자들은 스펀의 환매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펀드의 거래비용과 자산가치의 하락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불법거래가 뮤추얼펀드 판매사와 운용사의 협조 아래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BOA의 경우는 시간외 매매를 낼 수 있는 전용 단말기까지 설치해줬다.

 스턴은 단기매매 특전도 함께 누렸다. 단기매매는 조기환매와 같은 개념으로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단기매매는 해외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에 대해 널리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 역시 기준가격산정의 시차를 이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 시장에 집중 투자하는 뮤추얼펀드가 있다고 하자. 아시아시장은 미국증시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끝나 있다. 그러나 이 뮤추얼펀드의 기준가는 미국시장 기준으로 오후 4시에 산정 된다. 

 따라서 아시아 증시가 급등한 것을 확인한 헤지펀드가 미국시간으로 장중에 해당펀드를 산다면 이날 오후 4시에 산정될 기준가보다 낮은 가격에 펀드를 살 수 있는 것이다.

 헤지펀드는 그 다음날 높아진 기준가격으로 펀드를 되 팔수 있다. 하루사이의 초단기매매로 무위험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단기매매는 불법이 아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시킨 펀드 약관상 이 같은 매매를 금지하거나, 조기 환매수수료를 징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대다수 뮤추얼펀드들이 일반인 투자자들에게는 조기환매나 단기매매를 엄격히 금지하면서 큰손인 헤지펀드들에게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펀드운용자들이 선관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이중 잣대를 쓰고 있다는 것.

 카나리캐피탈의 단기매매가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자 SEC도 각 뮤추얼펀드에 공문을 보내 단기매매에 대한 약관을 재검토하고 투자자에 대해서 이를 공지하도록 했다.

 ◇흔들리는 `펀드천국`
 카나리캐피탈사건은 미국과 같은 펀드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후진적인 펀드 사기사건이다.

 특별한 파생상품이나 금융기법이 동원된 것도 아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래상의 약점을 파고든 것뿐이다.

 특히 BOA 등 이름있는 대형금융사가 직접 관련됐다는 점에서 펀드산업의 근간을 뒤흔들어 놨다. 만약 BOA 등 뮤추얼펀드가 카나리캐피탈의 불법, 편법거래 제의를 거절했다면 이번 사건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초대형 뮤추얼펀드들이 왜 이 같은 비리에 가담했을까. 

 지난 3년간의 증시불황과 펀드산업의 지나친 경쟁으로 펀드 세일즈맨들이 심한 압박을 받았고, 결국 불법적 거래에까지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 월가의 분석이다.

 카나리캐피탈은 시간외 매매와 단기매매를 해주는 댓가로 해당 뮤추얼펀드사에 1~1.5%의 수수료를 지불했고, 2000만~3000만달러의 장기자금을 예치했다.

 카나리는 또 해당금융기관과 파생상품거래를 독점적으로 하는 등 부수적인 협력관계(?)도 유지했다.

 그러나 카나리측이 이들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특전은 몇가지가 더 있다. 앞서 BOA는 카나리캐피탈에 전용단말기를 설치해줬고, 트레이딩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해 주기도 했다.

 스트롱캐피탈은 자신들의 펀드 포트폴리오내역을 카나리측에 제공, 숏셀링(short selling) 등에 활용하도록 했다.

 뱅크원도 1500만달러나 되는 돈을 펀드 단기매매자금으로 카나리캐피탈에 빌려줬다.

 이 사건에 연루된 뮤추얼펀드중 하나인 야뉴스캐피탈의 국제사업부문을 맡고 있는 리차드갈랜드는 스턴가문과의 비즈니스와 관련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남겼다.

" 나는 단기매매를 주로하는 펀드와 사업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네. 그러나 동시에 연간 1000만~2000만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네."

 약정 경쟁에 시달리는 뮤추얼펀드의 세일즈 담당자가 불법인줄 알면서도 카나리와 거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뮤추얼펀드는 9500만명이나 되는 미국인들이 애용하는 투자수단이다. 존 C 보글뱅가드 그룹 창립자는 "이번 사건은 뮤추얼펀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고 개탄했다.

 돈 필립스 모닝스타매니저는 "지금까지 미국의 펀드산업은 스캔들이 있더라도 특정펀드와 특정인으로 문제가 국한됐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일반인들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비리가 저질러졌고, 유명한 펀드가 대거 연루돼 뮤추얼펀드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벌써부터 헤지펀드에 대한 대대적인규제와 뮤추얼펀드의 지배구조 문제등이 도마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 펀드천국` 미국이 펀드산업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료 : www.funddoctor.co.kr)